느슨한 관계

오래된 이미지들을 실처럼 분해하고, 엮어 하나의 탑처럼 켜켜이 쌓아 올린다. 건물, 간판, 나무, 사람의 이미지까지 익숙하면서도 빛바랜 파편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속에는 과거, 우리 지역의 모습들이 숨어있다.

<유연한 관계>는 스냅사진을 태피스트리로 엮어서 제작했던 작업의 연장선으로, 엮기와 쌓기라는 방법을 통해, ‘과거의 기억(기록)을 천처럼 직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과거를 드러내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과거(기억)에서 찾고 싶었다. 과거 사진 자료를 통해 주관적인 기억 수집과 그 기억을 드러내는 것,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억을 도출하는 것 그리고 시각과 청각, 체감각의 다양한 링크들을 가시화시키는 것이 이 작업의 목표라 할 수 있다.

기억은 현장 A에서 현장 B 혹은 C로 건너갈 수 있는 문의 ‘열쇠’와도 같은데, 여러 기억(또는 열쇠)들을 한꺼번에 늘어놓음으로써 일상의 사건들을 재해석하게 된다. 편집과 집적(集積)의 작업 방식에 따라 구성된 연이은 고리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를 이루는 편물이 되고, 직물이 조형적으로 작업의 중심이 되길 바라며, 관객들이 무한히 엉켜 있는 실과 나무틀 속으로 기억 너머의 안쪽 구조까지 들여다볼 수 있길 희망한다.

나는 이제 막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공간과 사람들을 외부로 꺼내어 놓기 시작하였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함께 천천히 내일의 기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느슨한 관계

2021년 11월 9일(화) ~ 11월 14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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