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소록

도시소록

이선희(contact B77 기획, 시각예술)

1970~1980년대의 선주민들이 가꾸어놓은 예스러움과 새롭게 이곳에 정착한 젊은 친구들의 감각이 공존하는 이곳.

운천동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주택과 담장 안의 감나무를 통해 고즈넉한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좁은 골목과 골목이 연결되어 있고, 그사이에 하나둘씩 생겨난 개성 넘치는 가게들도 자리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골목길도 역시 빠르게 흘러가는 흐름 속에서 매일같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7~8년 전 젊은 친구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운천동에서 작은 공방과 카페를 열기 시작하여, ‘운리단길’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후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2차선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바뀌고, 많은 주택은 골조만 남기고 상업공간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운천동의 가을을 상징하던 은행나무 가로수는 뿌리째 뽑히거나, 베어지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도시를 이루는 작은 풍경 – 운천동을 비롯한 마을의 ‘식물’에 관한 작은 전시이다. 운리단길의 상징이 되었던 은행나무 가로수부터 주택 앞 작은 화분까지 소소한 풍경에 숨어있는 마을의 생명력을 기록하고 정리하였다.

우리가 생활하는 곳- ‘도시’만 하여도 땅이 모두 아스팔트로 덮여있기 때문에 식물을 구경하려면 화분, 스티로폼 상자, 고무 대야, 폐가구 같은 임시적 공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나마도 지상에는 자리가 없어서 옥상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전시되어있는 운천동의 항공사진을 보자. 사진을 처음 마주하면 계획도시를 상징하는 균일하게 나뉜 토지의 모양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각기 다른 건물의 모양과 지붕의 모양이 보이고, 그 경계 너머에 초록색 화분들이 보인다. 이번 리서치 참여작가 홍덕은은 이러한 풍경을 <pot scape>라고 명명했다. 작은 화분 하나가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면서, 마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빨간 고무 대야 화분은 집 앞, 옥상, 정원, 길가 등 언제든지 이동이 가능한 최적의 화분같이 보인다. 이는 언제든지 주택을 떠나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피고자 하는 도시인들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또한 식물을 키우는 행위는 단순히 식물을 기르는 행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환경과 사회, 정치적인 문제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는 <도시소록> 전시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 식물들을 통해 도시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라본다.

식물을 키우는 행위 자체는 본질적으로 자연을 즐기는 과정을 중시하는 행위이자 돌보는 행위이다. 하지만 식물은 키우고 돌보는 데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빠른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도 쌓여야 한다는 부분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도 삶의 태도를 바꿔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간과 돌봄이 주된 요인이 되는 식물 키우기는 자연스럽게 결과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식물을 키우는 행위 과정 자체가 현대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치유하는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생태학, 이성과 감성 사이의 이미지, 문화와 자연 사이의 대지예술, 건축과 자연 사이의 정원과 경관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다. 특히 환경오염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되면서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지게 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미술관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예술과 자연을 조화롭게 상생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일반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소유할 수 있게하는 장(場)으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