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사람, 일상의 트라이앵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는 우리들의 지문들이 촘촘히 얽혀서 구성되어있다. <마을과 사람, 일상의 트라이앵글>은 보이지 않는 지문에 숨어있는 도시의 근간이 되는 마을, 그 속에 사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일상 이야기를 기록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시이다.

마을과 사람, 일상의 트라이앵글
2020년 9월 21일 – 29일
갤러리 B77 (흥덕로122)

본 전시는 코로나 19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해 전시관람에 대한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예약관람 우선으로 진행합니다.

#주변의 고찰

현대사회의 마을과 재개발에 대한 고찰을 유도하는 3.김기성작가의 <봉명주공:나무를 위한 시퀀스>는 1980년대 지어진 청주의 1세대 아파트 봉명주공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곳은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경기침체 등으로 시공사 선정의 어려움을 겪어오다가, 2019년 본격적인 사업착수에 돌입하였다. <봉명주공>은 거주민들의 이주가 본격화되던 2019년 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되던 2020년 봄까지의 1년간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본 전시에서는 영화의 철거 전 아파트단지 내 조경수를 이식하고, 벌목하는 장면들을 재구성한 짧은 시퀀스를 선보인다.

7. 홍덕은작가의 <나무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한된 환경에 놓여진 나무의 시간을 유추하며,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나무들이 살아가고 있는 방법과 형태를 표본의 형태로 기록한 작품이다. 식물표본은 식물이 상하지 않도록 건조시켜 대지에 붙여놓은 것을 말하며, 해당 종의 가장 정확한 시간적, 공간적 기록물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나무가 우리 일상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확인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고민하고자 한다.

8. 이선구작가의 <중간을 위한 드로잉> 시리즈는 내부공간, 외부공간을 통틀어 인간이 평온을 취하는 장소를 부인하는 것에서 작업이 시작된다. 이는 이성적 사고의 사회시스템에 적응된 부작용이며,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평온과 불안의 중간에서 모호한 입장을 가진 건축물을 찾아내고, 드로잉으로 옮겨 본래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시간의 기록

2. 이규원작가의 <이사하자는 운천동에 새로운 작업실을 얻고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규원과 현진의 모습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담고 있다. 리모델링 후 공간과 친해지기 위한 시간, 지나가며 감을 전해주는 이웃 주민, 짜장면을 나누어 먹는 동네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까지. 그의 작업에는 타인과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도하는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마을과 주민들의 친근함이 녹아있다.

현대사회에서 소비의 과속화로 인해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작업을 전개하는 4.고정원 작가는 그 연장선에서 <Yangkkochee en>이라는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된 작품은 기능이 다하거나 혹은 가치가 없어져 그 본질을 잃어버린 사물을 수집하고, 그 사물의 실존에 대한 기록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쓸모없음’으로 판단된 사물의 ‘쓸모’에 대한 인식의 변화시키며, 지나치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건넨다.

5. 이재복작가의 <담바우 이씨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본적인 담바우 마을에 거주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아카이브작업이다. 담바우는 충북 괴산군 장연면 장암리의 우리말 지명으로 높은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가는 개인과 가족들의 내러티브를 담은 사진집을 제작하고, 그 과정을 아카이브 영상으로 남기어 현대사회의 가족 공동체에 대한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일상의 가치

누군가에게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거나 기억을 더듬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아 현재와 앞으로의 자기 인생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 정현진작가의 <jini SNS>는 개인의 일상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순간들을 업로드한 개인 SNS의 사진과 기록을 하나의 영상으로 몽타주한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귀뚜라미, 풀벌레 사운드와 믹싱작업한 이 영상은 아련한 추억과 더불어 평범했던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소중한 시간을 전해준다.

운천동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하는 6. 장연수작가의 <담다앉다놓다>는추억이 깃든 소중한 사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담는 것에는 어떤 물건을 넣어두는 것 그리고 내용이나 글, 말, 마음 따위를 포함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는 소중한 무언가를 담는 대상을 가방에 두었고, 디자이너의 컬렉션과 같은 가방에 나름의 의미와 해석을 ‘담아’보았다. 또한 존재의 자리함을 나타내는 ‘앉다’, 손으로 잡고 있는 상태의 무엇을 펴서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놓다’. 이 병치된 세 개의 단어는 서로 조우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해내고 있다.

개인에게 의미있는 사진들을 타피스트리로 엮은9. 이선희작가의 <독백사이의 말걸기>는 ‘기억도 직조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작업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억을 소환하여 실제와 같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현재의 기억에 맞추어 대부분 재가공되어있다. 기억의 희미하거나 망실된 부분을 직물 기록으로 남기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트라이앵글은 세 개의 꼭지점과 세 개의 변으로 이루어진 도형을 의미하며, 주변의 지붕, 건축, 교각 등 언제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완벽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말한다. 본 전시를 통해 도시의 맥락에서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추적하고, 여러 개의 삼각형이 얽혀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그물망이 마을과 사람 일상의 균형을 촘촘하게 채워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